
산골에 살면서 배운 것이 많다. 배움은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서 내게 깊이 스며들었다. 전에 물론 알았던 지식이 살아서 나와 하나가 되어 갔다. 전혀 다른 생활방식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것은 흥미롭고 호기심이 신이 난 삶이다.
처음 산촌에 이사와 겨울을 아궁이에 불을 피우면서 살아야 했다. 나는 저녁마다 평생 처음 해보는 불장난으로 즐거웠다. 겨울에 보통은 저녁에 한차례 불을 땠지만 추운 날은 아침에도 장작을 때면서 재미있었다. 밭에 남아있는 옥수수대와 낙엽 및 각종 밭의 처리해야 할 것들 -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 모두가 내 불장난의 불쏘시개로 사용되었다. 그것도 내 일과의 하나가 되었고, 정리되어 가는 밭이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온들방에서 자면서 느낀 것은 구들을 잘 놓는 기술이 매우 중요 할 것 같다. 내가 자던 방의 온기가 오래 지속되고 윗방까지 더우니 말이다. 오래 된 집의 온돌방은 잠을 잘 때 방이 점점 식는 것이 아니라 점점 뜨거워졌고, 아침까지 전혀 식지가 않았다.
하지만 겨우내 나를 감동시켰던 온돌시스템이 전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궁이와 붙어 있는 부엌에 놓인 하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닦아도 며칠만 지나면 표면이 꼬질꼬질해 졌다. 씻어 엎어놓은 그릇, 찬장 안의 그릇도 며칠이 지나면 꼬질꼬질해 졌다.
가끔은 묻힌 줄도 모르게 나의 어딘가에 숯검뎅이가 묻어 있었다. 묻힌 줄도 모르는 숯검뎅이, 미처 모르면 이부자리에 까지 검뎅이가 전파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 숯검뎅이가 내게 묻는지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며 세밀하게 관찰했었다. 그리고 아궁이의 입구 틀과 주변 벽 등도 만져 보았다. 그 결과 단지 아궁이의 장작을 넣는 입구에서 묻는 것임을 알았다. 내 오른 팔이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면서 나도 모르게 팔이 아궁이 입구의 오른쪽 벽에 자주 닿는 것이었다.
그렇게 숯검뎅이를 묻히지 않기 위하여 주의할 곳과 내 팔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함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웃도리 길이가 긴 옷은 입지 않아야 함도 챙겼다. 그래도 모르니 아궁이에서 장작불을 지필 때 전용 작업복을 입었다.
숯검뎅이와 연기로 인한 주위 오염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나의 의식관리 체계도 더욱 정비해야함을 깨우쳤다. 우리는 오염되는지 모르면서 오염되고, 한 번 오염되면 그 오염은 계속 주변에 확장된다. 옷에 묻은 검뎅이가 이불에 옮겨지듯이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검뎅이도 늘 즉각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보이지 않는 우리 의식체계에서의 오염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모르기에 더욱 의식에서의 오염이 위험한 것이고 확장력이 클 것이라 본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세심하게 자신을 관찰하고 주의 깊게 생각이 뻗어나가는 방향을 봐야 하고 자신의 언행을 봐야 함을 철저하게 배운 산촌에서의 첫 겨울이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듯이 나의 의식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의 인식체계에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함도 알아차렸다. 옷이 지저분해지면 갈아 입듯이 의식도 때에 따라 옷을 갈아 입힌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염의 근원적인 곳, 숯검뎅이에는 접근을 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다시 점검하며 나의 아궁이에 감사했다.
요즈음 많은 사람이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사는 것, 육체노동을 안 하는 것 등이 잘 사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움직임이 부족한 몸을 위하여 따로 운동을 해야 하고, 흔하지 않은 것을 귀하다고 여기고 그런 것을 소유하고,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것 말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대체로 무시하기가 쉽다. 그런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전염병 팬데믹(PANDEMIC)이 일어난 것이라 여겨진다. 보이지 않는 세균이 모르는 상태에서 전 인류에게 전염병의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가치, 관념, 의식체계 등을 살피면서 사는 사람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산촌의 한구석에서 나는 작은 꽃밭을 가꾸며, 자연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감사하며 즐거움으로 산다. 그런 삶이 내게 베풀어졌음에 무한 감사를 한다. 5월의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세상에 사랑을 전한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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