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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다 늙어가는 한 아주머니를 봤다. 그녀는 탈모가 진행되어 머리가 휑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젊어 보이기 위하여 파마와 염색을 하고도 해결이 잘 안되는 머리의 빈틈에 흑채인가를 뿌리고 두피에 무언가 칠을 하고 있었다. 파마와 염색이 탈모를 더욱 촉진한다는 전문가 말에도 그녀는 젊어보이고 싶으니 할 수 없다고 한다. 평범한 말이기도 하고, '지금'이라는 순간에 살아야 한다는 지혜의 말씀을 의식도 못한 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훌륭한 말이기도 하다. 지금 젊어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나중 일은 모른다는 태도...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한다. 특별한 노력을 안 해도 대부분 나이에 맞는 특징을 나타내며, 몸은 성장한다. 그러다 성장이 멈춰지는 때가 오고, 사람은 익어 간다. 생명체로서 생물학적 노화가 진행된다. 머리는 희끗희끗 해지고, 머리의 숱은 줄어들고, 얼굴엔 주름살이 생기고 깊어도 간다. 연륜의 깊이가 깊어지고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사람은 사랑과 행복에 취해 기쁨을 노래하는 때도 있다. 또한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잃기도 하고, 떠나 보내기도 한다.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고 성취감에 젖기도 하고, 또 다른 욕구에 끌려 성취감을 즐길 사이도 없이 다른 일로 떠밀려 가기도 한다. 삶에서 꼭 있어야 된다고 여긴 것들을 가지게도 된다. 꼭 지켜내리라 마음 먹었던 소중한 것들을 잃기도 한다.
꿈을 꾼다. 행동에 옮겨도 본다. 꿈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더 높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외치며 자신의 앞에 놓여진 길을 달려도 본다. 그리고 넘어져도 본다. 훌훌 털고 일어나 절뚝 거리며 걸어도 본다. 달릴 때는 몰랐던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도 한다. 다양한 삶을 보고, 길을 잃어도 본다. 미로나 캄캄한 어둠에서 초조함으로 길을 찾느라 헤매기도 한다.
삶의 한 장이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국면을 만나기도 한다. 수치스러움의 벽, 무지의 벽, 오만의 벽, 두려움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자신에게 아주 내밀한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지 못했던 ‘자신’을 비로서 만나기도 한다. 진지하게 죽음과 만나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가졌다고 여겼던 힘을 상실하고, 쇠약해가는 육체의 힘을 경험으로 익힌 정교한 삶의 기술로 대체도 해 본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사람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얄궂게 움직이는 마음을 가졌는지를. 또한 얼마나 얄팍한 지를. 얼마나 겁이 많고 두려움에 차 있는 지를. 그런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어떤 포장을 하는지를.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를 두려워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다 또 알게 된다. 사람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부족함을 인정하고 늘 주변에서 구하고 배워야 함을. 그리고 스스로 멋있는 존재로 자신이 자신을 만들어가야 함을. 그래서 늘 학습을 해야 함을. 이 세상과 자연이 경외의 대상임을. 길을 잃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가 나침판을 마련해야 함을. 스스로 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해야 함을.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진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삶의 길. 그리고 구하고 찾는 과정이 삶이라는 깨우침. 또한 구한 것을 누릴 만한 사람임을 스스로 믿으며 그에 걸 맞는 자신으로 키워가야 하는 것. 자신이란 그릇에 깨우침을 계속 담아야 하는 것. 그런 깨우침이 쌓여 무르익는 것. 그러한 것이 늙음이리라.
그렇게 사람이 비로서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지혜이고 혜안이리라. 그런 깊이가 주는 아름다움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이고 멋이리라. 그리고 사람이 뿜어낼 수 있는 빛이리라. 인간이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고 가야 하는 길이리라.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며 농익어가는 사람이 바로 늙은이다. 사람은 각자가 선택한 삶의 태도 에 따라 조금씩 발효되거나 부패되면서 그렇게 자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리라. 그것이 죽음일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한 번은 죽는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이것은 생명체로서 우리가 시간적으로 제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매 순간은 사람에게 대단히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 가장 고독한 내밀한 고독 속에 확보되어 있는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외로움! 거기에서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의 가볍고 헤픈 시선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나'만의 모습으로 머물 수 있는 그곳은 고요함이다. 늙음을 즐길 수 있는 곳, 자신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즐거움으로 농익은 자기 자신을 발효시킴으로써 세상에 스며들어 갈 것이다. 이것이 늙음이리라.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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