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다녀온 화장실, 아침에 가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어쩌다는 화장실 변기 사용 후 물을 내리지 않았음을 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 해오던 일도 잊고 순간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은, 그순간 다른 곳으로 이미 갔음을 말한다. 늘 사용하는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집안을 온통 뒤지는 일도 있다. 그러면서 왜 늘 두던 장소에 없는지 얄궂게 움직인 자신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얄궂은 생각으로 움직였으니 평소 자신의 상식을 따라 찾아다니는 내게 물건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무엇인가 쓸려면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이런 자신을 보면서 잠시 한심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다 치매라는 불행한 병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런 상태에 머물면 안 된다는 결정을 했다.
물을 마시려니 조금 전에 쓴 물컵이 보이지 않는다. 컵을 어디에 두었을까 찬찬히 생각해 본다. 자신이 조금 전에 어떻게 어디에서 물을 마셨는지가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딱 그 순간, 컵을 둔 순간에 대한 기억만이 없다. 이것은 그순간 그곳에 내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다른 곳에 그순간 내가 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철저하게 머물러야 함을 알아차렸다. 나의 움직임을 내가 항상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을 챙겼다.
'지금 여기'에 늘 머물기란 쉽지 않다. 늘 하던 행동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은 순간 나를 데려가 모르는 사이에 손에 있던 컵을 엉뚱한 곳에 놓게되는 것이다. 물건을 찾기 위해 물건을 사용하던 전후의 기억들을 찬찬히 찾던 나는 그 하나하나가 다 기억됨에도 놀랐다. 기억이 된다는 것은 의식이 같이 움직였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의식이 배제된 순간에 움직여진 것이 확실하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면서 이제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 늘 머물게 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챙기게 되었다. 행동을 하는 나, 그것을 의식하는 나, 그러한 내가 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산촌을 매일 걸으면서 동시에 팔운동을 한다. 하루에 1500 회 정도를 하는데, 100 씩 끊어서 숫자를 센다. 하지만 숫자를 세던 나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습관적으로 숫자는 세게 되지만 다시 돌아온 나는 그 숫자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수시로 사라지는 나, 습관적으로 걷는 나, 의식의 순간 외출을 통제해야 함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 머무는 훈련이 필요함도 알아차렸다. 이제 늘 의식을 붙잡고 숫자를 세는 훈련을 한다.
나는 이제 늙어가면서 '지금 여기'에 머물러 내 의식을 통제하는 훈련을 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움직임을 인지함으로써 기억을 제대로 관리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편안한 곳에 편안한 마음으로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내게서 치매에 대한 우려감은 어느덧 사라졌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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