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듯올듯하면서 장마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개울 물이 말랐고, 저수지 바닥이 보이는 곳도 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듯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애만 태우고 몇 방울의 비만 뿌리고 간다.
어젯밤에는 비가 촉촉히 왔다. 보슬비가 보슬보슬 목마른 대지를 달래는 손길처럼 왔다. 산촌에 들어와서 살다보니 예전과 달리 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날씨에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나에게 TV가 세상의 일을 전한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 내가 나의 정원과 밭에서 일으키는 재난들. 마찬가지이다. 재난을 일으키는 나도 의도한 것이 아니다. 잡초가 너무 많다고 느낀 순간 손이 움직인다. 깊고 넓게 퍼진 뿌리를 가진 풀도 느닷없는 사형을 당하는 것이고, 그 풀뿌리에 의지하여 보금자리를 꾸민 벌레들. 갑자기 세상에 노출된 지렁이이 꿈틀거림, 무너진 개미의 성. 개미의 분주함. 우리가 재난에 보따리 하나 들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인류에게 발생하는 재앙, 이런 것이 아닐까? 무언가 균형이 깨어질 때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것이 자연재해가 아닐까? 무엇인지 모르는 힘,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꾀함으로써 전체 생명을 하나로 인식하는 힘. 그런 힘의 개입이 정원의 생명체에 개입하는 나와 같은 것이 아닐까...
201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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