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작은 개미들의 활동이 매우 분주하다. 작은 풀뿌리 하나 하나에 그들의 집이 만들어진다. 풀을 뽑으면 하얀 개미알이 환한 세상에 드러난다. 마당에 놓여진 돌을 하나 치우면 그 아래에도 개미알이 하얗다. 알이 노출되었음을 안 일개미들, 위기를 느낀 개미들이 일거에 달려들어 알을 하나하나 물어 본래 집이 또 있는지 얼른 옮긴다.
그런 상황에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찾으러 갔다 오면 이미 개미알을 다 치워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다행히 바지 뒷주머니에 마침 휴대폰이 있어 아래의 사진을 찍었다. 자세히 보니 개미알이 있는 옆에 작은 구멍이 뽕뽕 2 개가 있다. 개미들은 부지런히 알을 물어 구멍안으로 옮긴다. 개미알이 무척 많았으나 알을 옮기는 작업은 3 분도 안 걸려 끝이 났다.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는지 신속하게 작업을 한다.

개미들을 보면 종족보존을 자기네들의 절대절명의 의무로 여기는 듯 하다. 풀들을 보아도 늦게 태어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급하게 자신이란 생명이 마쳐야 할 삶의 목표가 바로 종족보존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종족보존에서 보존이 아니라 생명체들은 지속적으로 확장을 시도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무수한 씨를 만들어 사방에 뿌리고, 많은 알을 낳아 개체수를 늘린다. 맹목적인 종족보존이고 확장이다.
사람도 본능적으로 자식을 만들고 키웠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대는 꼭 이어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예전에는 살아 남을 확률이 적어서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이제 의학기술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로 자식을 적게 낳는 시대가 되었고, 근자에는 애를 많이 낳으면 출산장려금까지 준다.
한 가정에 아이가 적다보니 '금쪽 같은 내새끼'라는 말도 한다. 금쪽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자식의 소중함을 금쪽에 비유할까. 자식은 금쪽 보다 더욱 소중하다. 우리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인지하면 살아야 한다. 아주 작은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맹목적인 확장작업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우리는 종족보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자기 삶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종족보존이라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자기 삶의 의미가 부를 축적하고 높은 권좌에 오르는 것이라 여기면 이에도 할 말이 없다. 삶의 의미, 근원적인 삶의 의미에 대하여 진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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