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상된 반려동물의 격
자발적인 집사들
  21-07-17 11:28 이화순   
70 평생 내게 제일 놀라운 변화로 다가온 것은 개와 고양이의 대단한 신분 상승, 상상할 수 없었던 신분 상승이다. 개를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개의 부모임을 자처해 '엄마, 아빠'라는 말을 쉽게 쓴다. "엄마 한테 와" "아빠 한테 손 줘" 등의 말을 하며 진짜 자식들을 개의 '오빠 언니'라 부른다. 전에 개를 위한 유료 TV 서비스, 주인이 외출 하면서 개를 위해 틀어주는 방송이 있음에 놀랐었다. 최근에 TV에서 강아지 옷장이 있는 집도 봤다. 도시 공원 앞에서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또 한 사람은 소중히 끌어 안고 진지하게 강아지가 무척 아파 수술을 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대화를 하는 강아지 엄마들도 봤다. 내게는 마냥 신기한 일이다. 

또 유기견센터에서 안락사 위기에 놓여진 아픈 개를 데려다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을 여럿 봤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신도 주체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기적인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임이 틀림 없다.

요즈음 TV에서 'Human grade'를 내걸고 하는 개의 음식 광고를 봤다. 식재료도 건강한 것들을 사용한다고 한다. 사람이 먹어도 된다고 한다. 사람이 부모인 그들은 당연히 'Human grade'의 식사를 해야 되겠지. 이 노인네는 그저 놀랄 뿐이다. 전에는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실내에서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들과 강아지를 같이들 키우는 경우가 많다. 상식이 바뀐 것이다. 문화가 바뀐 것이다. 노인네가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이다.

요즈음 난데 없이 집사(執事)라는 단어를 자주 만난다. 예전에 소설에서 많이 만난 단어이다. 주인 가까이에 머물며 집안 일을 맡아서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나는 알았다. 그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에서 처음 새롭게 집사라는 단어를 만났다. 

고양이를 살뜰하게 돌보며 기르는 사람을 집사라고 요즈음 말한다. 이른바 고양이 시중을 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애완견 문화, 반려견 문화가 확장되더니 이제 애완묘를 넘어 반려묘 문화도 널리 퍼지고 있다. '반려' 대상이 있어야 된다는 인간의 욕구가 이제 사람을 넘어 개와 고양이에게 까지 이른 것이다.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애완동물,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 등 관련 사업이 늘어난다. 동물을 위한 수목장 사업을 하는 승려가 TV에서 소개되는 것을 봤다. TV를 그리 많이 보지 않음에도 TV는 수시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내게 제공하니 산촌에 앉아서 고맙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사람들, 산촌에서 다른 동물들을 만나면 기겁을 하기도 한다. 기겁을 하고 질러대는 소리에 동물들은 놀라 도망가기에 급급 하거나 공격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성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마치 돈을 벌기위해 태어난 듯 산다. 그러면서 살기가 힘들고, 돈 벌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반려동물을 위해서 돈을 아낌없이 쓴다. 그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여기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 반려동물의 집사가 되어 산다는 것, 참으로 웃기는 삶이라고 본다. 

산촌에서 그런 세상 너머에 사는 나로서는 담담한 자세로 구경할 뿐이다. 하지만 때론 무척이나 재미가 있다. 조만간 로보트가 반려동물을 대신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아님 로보트가 주인과 주인의 반려자인 동물을 돌보게 되는 것인지...

나는 소망한다. 인간은 인간 답게, 개는 개 답게, 고양이는 고양이 답게 살기를...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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