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8. 눈과 한파로 방구석에서
아름다운 겨울
  22-12-18 12:42 이화순   
2022년 12월18일 일요일 맑음

화창한 날이지만 매우 추운 날이다. 날씨가 '매서움'이란 이런 것임을 알려준다. 그래도 햇살에 처마밑 고드름은 녹으며 방울방울 반짝이는 보석을 떨군다. 춥다고 꼼짝않고 침대에 비스듬히 반 누운 자세로 창문을 통해 고드름과 햇살이 천천히 만들어내는 보석을 보면서 흐뭇하다. 매섭게 추워도 아름다운 날이다.

그런데 그 매서움이 물을 못나오게 한다. 아침까지 나오던 물이 지금은 나오지 않는다. 밤새 전기난로를 화장실에 켜 두었고 지금도 여전히 켜 있다. 햇살도 빛을 내고 고드름도 녹으니 물이 곧 녹겠지만 낮아진 온도는 좀 높아지기 시작해도 곧 온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삼 챙겨든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흔히 잊는다.

어제 오후 산촌 걷기를 나섰다가 눈도 펑펑 내리기 시작하고 추워서 포기하고 들어왔다. 집 현관에서 찍은 눈이 오는 모습이다.


요즈음 사람을 전혀 보지 못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제 걸을 때는 자동차도 전혀 다니지 않았다. 오늘은 햇살이 찬란하게 눈으로 덮힌 산촌을 비추니 새들의 소리가 집에서도 간혹 들린다.

눈이 온 후에 저수지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가려 했으나 가는 길이 비탈이어서 못갔었다. 그제야 비탈길의 눈이 좀 녹아서 저수지를 방문했다. 비탈길을 오르니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오늘 가서 본다면 어제 온 눈으로 더욱 아름다울텐데 아쉽다.


저수지 수면이 얼어서 묘한 색으로 아름답다.



내려오면서 만난 이끼가 푸르름으로 예쁨을 자랑한다.


전국에 한파경보나 주의보가 발효되고, 항공기등도 차질이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지난 주간 출퇴근하느라 수고한 사람들에게 나는 산촌의 따스한 방구석에서 미안함을 느낀다. 예전에 서울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가는데 88도로에서 4 시간이나 걸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고단함이 있었기에 노인이 된 나는 안락함을 편안함으로 즐긴다.

자연에서 날씨의 변화에 따른 자그마한 아름다움들을 발견하며 기쁘다. 겨울이 되면 무조건 화목난로를 피우려고 들던 생각을 던지고 전기의 힘으로 편하게 따스함을 즐기고 있다.

전기료와 보일러에 쓰는 등유 가격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되었음에 감사하다. 내가 돈을 쓰는 곳은 먹거리 장만과 난방비용 뿐이다. 먹거리에 돈이 별로 들지 않음을 산촌에서 홀로 살면서 알게 되었고 먹거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먹어야 얼마를 먹겠는가. 똑같이 작은 오두막에서 내가 전기를 써야 얼마나 쓰겠는가. 전기난로가 2 개 온풍기가 1 개 있고 가끔 쓰는 방 하나에 전기 장판이 있다. 그리고 나의 침대에 전기요를 쓴다. 밤새 보일러를 가동해도 10월에 1 드럼을 넣은 것이 아직 쬐끔 남았다. 며칠 내로 기름을 넣어야 한다.

편안하게, 따스하게, 맛있게, 삶을 즐기며 살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경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맙다. 그저 무조건 돈이 많이 들 것이라 미리 두려워하며 돈을 버느라 애쓰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다. 또 늙어가며 노후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게 살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후손들을 편하게 하는 것임을 전하고 싶다. ㅎㅎㅎ
춥다며 산촌걷기를 뒤로 하고 이런 편안한 생각을 하는 내가 예쁘다.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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