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11일 금요일 맑음
산촌 마을 도로변의 나무들은 거의 떨어져 그동안 감춰졌던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잎을 다 떨군 은행나무에 나타난 말벌의 집. 둥그런 모습으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이다. 은행나무가 많은 잎을 달고 있어 벌집이 겉에서 보이지 않았듯이 사람들의 마음도 바깥 세상의 일로 번잡그러우면 마음의 상태를 알 수가 없다. 나쁜 무엇인가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커가도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심신이 균형을 잡고 안팎을 잘 정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번잡함을 피하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리라.
알록달록했던 산들의 색이 정리되어가고 있다. 요즈음은 낙엽송이 불그스레 변하면서 산 색깔 변신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마을 300 년을 훨씬 넘게 살아 보호수가 된 둥구나무도 이제는 색이 완전 변하며 잎을 떨구고 있다. 둥구나무는 커서 한 가지만으로도 멋스러움을 보여준다.
가뭄이 계속되는 날을 걱정하며 산촌을 걷는다. 물의 흐름이 약한 곳에는 개울에 지저분한 무엇인가가 생겨나고 어떤 곳은 파란 이끼같은 것이 생겨난다. 물은 흘러야 건강하다. 인간인 우리의 건강한 심신도 흐름을 따라 변해야 건강할 것이라 여겨진다. 자신의 고정된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흐르면서 생각을 키우고 심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변한다는 것이 트랜드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장이다. 성장을 하면서 자신의 성장을 보는 것, 굉장한 축복이다. 이런 축복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들어온다.
아름다운 산촌에서 아름다움과 평화를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 아름다운 산촌이 나를 불러들이고 환영하며 안아주었다. 내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산촌은 계속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푼다. 그리고 생존이란 걱정의 대상이 아님도 확인시켜 주었고, 삶은 자신에게 베풀어진 것을 즐기는 것임도 확신시켜 주었다. 이제 내게서는 많은 욕구들이 사라졌고, 편안함과 평화를 즐기는 존재임을 느끼며 산다. 이 세상에 그저 있는 존재가 되었다. 막연히 상상했던 삶의 흐름이 명료해지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해졌다.
어제도 오후 5시 반이 가까워지는 시각에 하늘이 예쁜 색으로 잠시 바뀌며 또 하루의 날이 간다고, 또 하루도 즐겁게 살았음을 알려주었다.
visionary 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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