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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20일 화요일 맑음
어제 산촌을 걸으면서 수확될 날을 기다리는 논들을 보고 요즈음 잠깐 놓쳤던 사실을 다시 챙겼다.
벼가 익어가면서 어제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그들은 작은 바람에도 춤을 춘다. 그들은 때를 순종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이 논에서 뛰쳐나올 수도 없다. 수확의 때가 오면 자신들을 베고 탈곡도 하고 선별까지 할 신기한 기계 콤바인이 찾아올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를 위해 그들은 뜨거운 볕에 자신을 더욱 숙성시키고 있다. 기다림의 시간을 자기 숙성의 시간으로 자기 삶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평소 '최선의 방향으로 최적의 방법으로' 내가 인도되고 있음을 믿고 산다. 그런데 최근 늙어가면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나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할까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스믈스믈 기어나왔다. 참으로 쓸데 없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나의 평소 평화와 고요를 잃었음을 나타낸다. 그런 내게 누렇게 익어가는 논이 내가 또 길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노인네가 늙어가면서 노화에 대한 걱정은 자신의 할 일이 아니다. 벼가 자신이 수확이 되지 않아 썩어갈까 걱정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때가 있다. 그저 지금에 충실하고 즐겁게 감사하며 살면 된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길을 잠깐잠깐 잃는 나를 위로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어제 들깨가 첫 수확된 모습을 아랫마을에서 만났다. 잘린 들깨는 밭에 누어서 볕에 자신을 말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모든 생명체는 사느라고 저마다 수고한다.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한다. 자신의 때를 고요하게 기다린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진에 나타난 사진을 찍는 나의 그림자가 재미를 준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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