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6월10일 금요일
이번 주는 바라고 바라던 비를 만나 흐뭇하게 지내고 있다. 처음 예보와는 달리 산촌에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비가 왔다. 어제도 저녁이 되면서 갑자기 소나기가 잠시 왔다. 물을 주는 작업도 안 하니 편하다. 그런데 요즈음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송풍 fan에 연결된 송풍관 쪽에서 새가 종일 바쁘다. 3월부터 새가 막아놓은 망을 뜯으려는지 애를 쓰다가 멈추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계속된다. 내가 포기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가가 봤더니 막아놓은 망이 느슨해 졌다. 새를 도와주려고 망을 잡는데 갑자기 안에서 새가 놀라 나온다. 어느새 그 속에 다시 집을 만든 것이다. 망을 뜯어낼 능력이 부족하고, 새도 놀랄까봐 조용히 그가 느슨하게 해 놓은 망을 위로 접어주었다.
그 새는 작은 박새로 보인다. 그의 의지가 엄청 강하다. 기어코 나를 이기고 자신의 집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fan을 돌릴 수 없으니 기름질 하는 음식을 더욱 삼가해야지. 이 부분에 나도 새처럼 의지를 강하게 해야겠다.
비가 와서 물을 충분히 먹은 풀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지난 주에 깨끗하게 풀을 뽑은 곳에 괭이밥이 또 무성하다. 괭이밥은 작고 얌전해 보인다. 그의 노란 꽃은 5개의 잎을 가진 앙증맞게 예쁘다. 하지만 그 번식력이 놀랍기에 그를 제거하는 일에 게으름을 부리면 마당과 꽃밭은 온통 그들의 차지가 된다.
비로 땅이 부드러워져 괭이밥을 잘 잡고 위로 당기면 뿌리까지 쏙 빠진다. 생명을 죽이면서도 재미를 느끼니... 뿌리가 남으면 그들은 또다시 잎을 낸다. 그리고 뽑는 중에 잘못 잡으면 씨앗이 사방에 튄다. 생존, 종족보전에 충실한 그들이다.
요즈음 제법 큰 까마중도 열심히 뽑는다. 산촌에 와 지식이 많이 늘었다. 새싹을 보고 정체를 아는 풀들이 많이 생겼다. 특성도 조금 알아차려 손으로는 절대 뽑히지 않는 친구들도 알아본다. 텃밭에는 사람에게 좋다는 쇠비듬이 많다. 하지만 그 친구들까지 뽑아 먹기는 내가 바쁘다.
앞마당에는 비단풀이 생겨난다. 비단풀도 아주 좋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좋은 게 많으니 그런 것들을 열심히 챙겨 먹어도 건강이 확보되는 것 아닌지...
옆의 마당 도처에 널려있는 딸기를 따 먹기도 나는 바쁘다. 작년 보다 딸기의 크기가 작아졌다. 내가 어떤 수고도 하지 않으니 그들의 땅이 척박해졌나 보다. 그래도 맛있게 따 먹는다. 파는 딸기와 다른 것은 씨가 소리를 내며 씹혀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공짜로 많은 것을 내어주는 자연, 자기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먹거리들이 내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고마운 자연, 많은 생명들의 어울림, 저마다 삶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의무수행에 열심인 생명체. 나도 그 속의 하나일 뿐이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
전체기사
710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