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16일 수요일 맑음
오늘 새벽에 잠결에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왔는지 모르겠다. 아침 7 시경 현관문을 여니 산촌은 안개에 싸여 보이지가 않았다. 집 현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당에서 잎을 잃고 서 있는 복숭아나무, 무궁화, 나무수국만이 보인다.
그러다 10시 정도에 걸으러 나서니 완전 다른 세상이다. 이것도 현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연통은 나의 난로 연통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햇살과 함께 펼쳐져 있다. 안개로 시야가 제한 되었을 때는 우리가 세상이 보이지 않아 세상이 어떠한지 모른다. 이것이 이른바 '모름'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다 햇살이 환하게 산촌을 비추니 드러난 세상, 이제야 산촌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가 있다. 이것이 '앎'을 가진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네 '앎'이 세상의 모든 것, 우주의 모든 것일 수가 없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주변이 보일 뿐이다. 주변에서 파악한 것이 앎의 쪼가리들이 되어 퍼즐을 맍추어가며 앎을 겸허하게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요즈음 산촌은 5 시가 넘어서면 어스름이 내려올 준비를 한다. 30분 정도가 되면 어두움이 내린다.
그렇게 산촌은 일찍 하루가 간다. 요즈음 나는 새로운 '앎'을 하나 찾아들었다. 그래서 감격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한 조각의 앎은 기존의 것들과 결합되면서 좌악 내면에서 퍼져나간다. '앎'이란 것은 참 묘하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았지만 내 의식층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온 것이다. 그저 고맙다. 그러면서 나의 대단한 어리석음에 또 놀란다. 사람들을 보고 말을 들으면서 인간 의식에 대해 늘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들으며 그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어떤 유리창으로 분리된 현상처럼 사람들의 의식은 따로 논다. 어떤 투명한 막을 하나씩 뒤집어 쓰고 사는 모습이라 여겨진다.
내가 나이어서 고맙다. 성장을 느끼면서 경외감도 성장함을 느낀다. 오늘도 또 하루가 간다.
visionary 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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