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서울에서 살던 삶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짐을 이고 지고 살았다. 짐이 살면서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짐은 점점 무거워져 나는 몸을 제대로 펼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주저앉은 나는 짐에 눌려 꼼짝을 하지 못하며 그 상황에서 살기위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실낱 같이 남아 있는 움직일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다 주저앉은 땅바닥이 무너지며서 나의 짐들은 떨어져 나갔다.
수고하고 짐진 자로 살았던 나는 짐에서 좀 놓여나 제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다 간신히 몸을 끌고 나를 받아줄 시골을 찾았다. 다행하게도 지금 사는 산골을 만났고, 산촌은 나를 환영하고 안아주었다. 성경에 보면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처럼 산촌은 수고하고 짐진 나, 지치고 지친 나를 포근하게 반겨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그 마음이 안타까웠을까 이해가 된다. 아마 세상은 나로인해 마음이 안타까웠나 보다.
고단하게 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할지도 사실은 몰랐다. 자신이 무궁화라는 나무인지, 복숭아 나무인지, 한해살이 풀인지 젼혀 몰랐다. 그저 내게 요구된 것이라 느껴지면 나 자신을 혹사하며 열심히 산다고 여겼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 그저 세간의 대부분이 쫓아가는 삶을 쫓을 뿐이었다. 나 자신의 비전과 가치관이 아닌 대중의 가치관을 그저 쫓을 뿐이었다. 이것은 복숭아 나무인데도 느티나무들의 삶을 흉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은 고단하게 살기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행복하고 위대한 존재로 태어났다. 짐을 내려 놓는 방법도 몰라 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나, 무너진 삶 가운데서 비로서 쉬어봤다. 그리고 냉철하게 둘러보았다.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맑아지면서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나는 안타까움에 '오호애재' '오호통재'가 절로 나온다. 고단했던 나의 삶을 다시 잠깐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홀가분한 나를 느끼며 나는 고마움이 넘친다. 나는 이미 나비와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먹고 사는 일에 그리 연연하지 않고 부족함도 없다. 그런 내게는 늘 먹거리가 풍성하다. 내가 소리치고 먹어야 얼마를 먹겠는가. 나는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음식을 수고하지 않고 다양하게 즐긴다.
채송화가 이룬 꽃밭처럼 다채로운 삶을 즐기며, 나는 나비 처럼 꽃밭을 유유히 즐긴다. 그런 나는 항상 자연의 품이 나를 따스하게 안고 있음을 느낀다. 길을 걸으면 늘 무엇인가 향긋함이 옆의 숲에서 나오고 있음을 느낀다. 온갖 신비로운 생명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며칠 비가 왔고 지금 모처럼 해가 나니 호랑나비 긴꼬리제비나비 등 큰 나비들이 너울너울 마당에서 춤을 춘다. 물잠자리들이, 개구리들이, 벌들이, 메뚜기들이, 다채로운 꽃들이 행복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를 기쁘게 한다. 돌연 만난 뱀을 통해 놀라움을 느끼고, 그가 스르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게 뱀의 출현에도 익숙해 졌음에 고맙다.
지금은 8월 말이다. 비가 오는 사이 쑤욱 노란 상사화가 여기저기에서 솟아났다. 같은 꽃이라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키도 꽃의 크기도 다르다. 꽈리가 빨갛게 익어간다. 해가 넘어가며 주는 신비로운 하늘, 비온 날 신비한 구름을 이고 있는 산. 밤에 내린 이슬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 풀잎에 맺힌 수많은 보석의 반짝임, 다양한 신비로움이 내게 늘 주어지니 지루할 틈이 없다. 신나는 삶에 고맙고, 이런 세상인 나의 산촌을 사랑한다.
나는 수고하고 짐진 자가 이미 아니다. 짐을 지지 않았으니 몸이 가볍다. 홀가분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비로서 느낀다. 그런 내게 베풀어지는 먹거리들, 볼거리, 즐길거리들로 수고 하지 않고도 풍요로운 삶이다. 그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지상을 날아다닌다. 나는 완전변태를 이룬 존재, 이제 나비가 되었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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