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해가 뜨고, 때가 되면 해가 진다. 달은 차면 기울고, 이런 자연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오묘하기가 짝이 없다. 산촌에서 식물들과 가까이 살면 그 오묘함과 진정한 삶에 조금은 다가가는 것 같다.
산촌에 봄이 오면 식물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그들과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되고, 조금 더 그들을 알게 된다. 그들의 놀라운 생명력과 회복력은 경탄을 자아내고, 그들의 빠른 성장속도는 경외감 마저 불러 일으킨다.
봄이 깊어지면서 많은 식물은 자고나면 모양을 달리 한다. 없던 곁가지가 생기고, 키는 훌쩍 크고, 꽃봉오리가 생겨나고, 꽃이 활짝 피고, 열매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죽었다고 마당 구석에 팽개쳐진 화분에서 다시 부활이 이루어져 기적을 느끼게도 한다.
식물이 커지는 변화를 매일 보면서 자신의 성장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 비로서 자신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알아도 늘 흔들거리는 행동과 사람의 언행에 대한 자신의 반응에 불편함이 줄어든다. 자신의 뿌리가 자라나서 땅속에 깊이 자리를 잡아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게 성장한 것이다. 흔들리게 되면 흔들리면서 흔들거림을 알아차리고, 그래도 고요함을 유지하면 흔들거림이 멎는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편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네들은 다른 사람들의 언행이나 마주친 문제에 마음이 흔들거리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뒤돌아 보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흔들거리지 않아도 되는데 등의 생각을 하며 자신의 나약함을 탓한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흔들거려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흔들거림을 그저 편안함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성장이다. 그리고 반응이라는 것도 습관적으로 이루어짐을 알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우리네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식을 어딘가에 숨겨두고 잠을 재우고, 습관적으로 산다. 그래서 석가도 예수도 늘 깨어있으라고 했음이 분명하다. 성경에서는 등불의 기름을 준비한 신부 이야기로 우리네가 늘 깨어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산촌의 밤은 완전 암흑이다. 그 어두움에 빛이 없다면 우리네는 어떤 것도 알아볼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등불을 켜서 언제라도 밝힐 수 있는 준비는 늘 깨어있으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눈만 뜨면 일어나 밭으로 나가는 노인네가 있다. 늙고 기운이 떨어져도 습관적으로 일을 찾아 해만 뜨면 밭으로 향한다. 90도로 굽은 허리로 자식들의 마음에 아픔이라는 예리한 비수를 날리면서도 그들은 습관적인 움직임을 지속한다. 그들은 “아프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밖에서 바쁜 생활을 고집한다. 그들의 집은 청소할 시간이 없어 대체로 어지럽고 지저분하다. 먹거리를 만들어 감당도 못할 크기로 싸서는 버스에 싣고 택배를 위해 나선다. 거동이 힘든 몸, 지팡이를 버스 안에 던져넣고 짐을 버스에 싣기 위해 바둥거린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스에 타고는 또 차비를 찾고 내느라 버스를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하는 노인네. 그런 노인의 밥상은 물에 말은 맨 밥에 김치 하나가 전부이기도 하다. 이는 오래 지속된 생활이 여전히 살아서 그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네 의식은 깊이 잠이 들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저 자고 일어나면 일하러 가야 하는 존재, 자식이 이미 컸어도 그에게 하나라도 더 먹여아 하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깊게 잠이 든 의식은 쉽사리 깨어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잠시 깼다가도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그 의식이란 것을 늘 깨어있게 하는 것, 자신이 가야하는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으로 확실한 것이 바로 고통이다. '고통'이 의식을 늘 깨어있게 한다. 명료하게 깨어있는 의식은 매 순간 삶과 세상이 베푸는 '깨달음'을 가지게 한다. 깨달음으로 좀 더 '앎'을 가지게 되면 어느덧 고통이 없어도 명료한 의식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명료한 의식은 꽃밭의 식물을 비추는 태양 처럼 자신을 키우게 한다. 밝은 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해는 쨍쨍 비칠 때도 있고, 구름이 가득 차 저 멀리 산이 잘 보이지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진리를 이제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챙긴다. 그러면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이라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교감하며 자신을 지키고 키우는 것이 삶이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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