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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시절 내게 편안함을 늘 선물하는 '소공녀(프랜시스 호지슨 버넷)'는 크면서도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같은 작가가 쓴 '소공자' '비밀의 화원' 등도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책이었다. 그러나 내가 커서까지 옆에 남아 친구가 되어준 책은 '소공녀'였다.
고등학교 시절, 스릴러물의 소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두 손을 서로 힘주어 꽉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소공녀'를 찾아 읽었다. 그러면 나모 모르게 들어갔던 힘은 사라지고 몸이 부드러워졌다. 마음은 나도 모르게 내가 보고 듣고 하는 것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소공녀는 존귀하고 영리한 공주로 상황이 변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존재이다. 그에 대비된 인물이 기숙학교의 교장인 민친 선생으로 그녀는 천박하고 인색한 멍청이로 남 위에 군림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느끼고자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는 돈이 많은 학부모의 돈에 의존하는 비굴한 존재이다. 자신의 비굴함을 만회하는 수단으로 약한 존재에게 군림하고 그로써 느끼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려는 멍청한 존재. 우리가 어떤 존재감을 가져야 하는지 이 소설은 명확하게 짚어준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공주처럼 귀하게 컸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 여성들을 만났다. 심지어 지금 내가 침거한 산촌의 노인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남 위에 군림하려고 드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공주라고 으시대면서. 이는 자신이 멍청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주나 왕은 남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을 보살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존재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존재의식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세어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아. 누더기를 입고 있다 해도 마음 속으로는 공주일 수 있어. 금빛 옷을 입고 있으면 공주로 행동하기가 더 쉽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늘 공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지 상황이 어떠해도 자신의 정체성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자신의 본질로, 존재의식이 되어 삶을 만들고 자신을 만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돈이 더욱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돈이 많든 적든 많은 사람들이 결핍감에 찌들어 있다.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요소로만 본다면 훨씬 편한 마음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수입에 맞는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으나 지금은 모두 동일한 공간이나 주거 형태, 삶의 방법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소공녀'의 주인공 세어러는 관찰을 하고 상상을 잘 하는 영리함이 있다. 호기심이 있으면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관찰을 하게 되고 사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해 세어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난 어떤 사람들은 정말 자세히 살펴봐. 그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으니까. 그렇게 자세히 본 다음에 나중에 거기 대해 생각을 하지. 동화책 하나에도 삶에 대한 가르침과 제시가 많이 있다. 쓰윽 훑어보고 다 봤다며 책을 덮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인간의 두뇌는 동시에 많은 지식을 다 이해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책도 자세히 본 다음에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가 이해 되면 이어서 다음 것이 또 이해가 되면서 책의 가르침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이다. 심오한 책일수록 되삭임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건만 잘 모르니까 가볍게 치부하고 쓱 던져버리는 자세.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말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듣는 불행한 멍청이의 행동이다. 자신이 멍청한지 모르는 멍청함, 바로 '소공녀'의 민친 선생 같은 사람이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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