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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서 시작된 잡초제거 작업. 이것은 내가 매일 살생작업을 한다는 말이 된다. 처음에는 풀만 뽑았으나 기온이 올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생명을 이제 때려잡는다. 땅 속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있다. 풀을 뽑으면 같은 공간에 있던 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움직이지 못하는 번데기 류도 있고, 꿈틀거리는 지렁이류도 있다. 지렁이는 얼른 흙으로 덮어주지만 정체를 모르는 벌레들은 대체로 미안하다며 때려잡는다. 그런 내게 얼마전 입을 크게 멀리고 목을 곧추 세우고 죽은 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경악을 하며 죽은 듯한 뱀의 모습은 내게 놀라움을 주었고, 생명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했던 나는 어느덧 벌레들을 말그대로 때려 잡는다. 요즈음은 잘 보이지도 않는 붉은 진드기를 꾹 눌러 죽이면서 그가 붉은 액체를 쏟으며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죽이는 벌레들, 놀라죽은 듯한 뱀은 놀랄 틈이 있었겠지만 내게 죽은 벌레들은 놀랄 틈도 없이 죽는다. 그들은 삶에서 죽음으로 순간 이동을 한다. 그런 그들에게 미안함이 넘친다. 그렇다고 그들이 죽지 않은 것이 아니건만 나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며 죽인다. 이는 나의 살생을 그나마 내게 미화하려고 드는 위선이라 여겨진다. 아이고...
전에는 풀을 뽑으며 만난 벌레들을 대체로 죽이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를 모르기에, 저마다의 생명이기에, 나는 살생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여름날 무수한 그들이 나의 공간과 나의 식물들을 점거하고 저지르는 살생작업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보는 즉시 죽이게 되었다. 참으로 내게는 애매한 문제이다. 그들이 평화와 균형이라는 것이 같은 공간의 존재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차리면 나의 살생작업이 필요없을텐데 안타깝다.
식물들도 평화와 균형이라는 것을 모르는 생명체이다. 매일 잡초를 제거하고, 영역을 설정해 주고 해도 그들은 자신의 종족을 확장하는 일에 굉장한 능력을 보여준다. 풀은 돌아서면 또 나와있다. 내 마당의 주도권을 나는 갖지 못하고 있다. 풀들을 따라 그들을 따라가며 없애기에도 나는 벅차다. 앞마당의 제거작업을 어느 정도 하고 옆의 마당으로 가려 했으나 앞마당의 풀들은 허락을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옆 마당은 풀들이 주인이 되었고, 키가 엄청 커서 서로 엉켜 있다. 자신의 밭을 넘어 옆마당 전체에 퍼져버린 딸기는 그래도 그 틈에서 용케 열매를 맺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익어간다. 풀을 헤쳐가며 빨갛게 빛나는 딸기를 찾아낸다. 손에 잡히는대로 꽃봉오리를 단 망촛대라는 풀을 뽑는다. 비가 온 후에는 그래도 그냥 뽑히는 아이가 있지만 대체로 내 힘으로 뽑히지 않아 호미를 휘두르게도 한다. 풀과 힘겨루기도 할 수 있어 재미도 있다.
저마다의 능력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내는 식물들이 있고, 꽃밭이라고 심어 놓은 꽃이 그들의 힘에 밀려 사라진 아이들도 있다. 여기에서 나는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이겨낼 수 있게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함을 챙겨 들었다. 이는 지금의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균을 죽이려 들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켜낼 면역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네 삶, 생명체의 삶은 하나의 이기고 지는 싸움일까. 그래도 싸움을 내가 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음으로 해서 자신을 지켜내는 그런 존재이고자 한다. 나의 발자국 소리에 쪼르륵 도망가는 다람쥐, 햇살을 즐기다 스윽 길섶의 풀숲으로 사라지는 풀뱀, 길가던 고양이의 뜀박질, 개울의 백로... 모두들 사람을 두려워 지레 도망을 간다. 심지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의 아이들도 도망을 간다. 이렇게 우리들도 그 무엇인가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며 불안에 떠는 것은 아닐까.
사자가 사람이 다가 온다고 놀라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강한 존재임을 알기에 가만히 앉아 다가오는 사람을 관찰할 것이다. 위대한 인간인 우리,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머물 수 있는 존재이고자 한다. 평화의 가치, 만족의 가치, 여유로움의 가치를 알아차린 행복한 존재이고자 한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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