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나이가 70이 되었다. 불가사의한 삶, 생각 밖의 갑작스러운 우연, 예측이 불가능한 굴곡진 삶의 전개 속에서 나이 70이 되었다. 나는 그런 내가 대견해 흐뭇하다.

나는 나의 산촌에서 배가 고프면 나의 밥을 먹는다. 추우면 나의 난로에 불을 피우고, 나의 보일러를 켜고, 나의 옷을 입는다. 해가 저물면 나의 집에서 쉰다. 그리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해가 쨍쨍 빛나거나, 산촌의 길을 걷고 즐긴다. 해가 저물 무렵 구름의 신비한 흐름을 즐긴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 여러 생명체들의 소리와 함께 한다. 

'나'라는 존재감이 조금씩 산촌에서 자라났다. 산속에 숨은 듯 핀 야생화의 아름다움, 화려하게 자신을 돋보이는 자세로 피어낸 꽃들이 존재감이 이런 것이라 알려주었다. 존재의 대단함을 느끼며 나는 자연에 점점 다가갔다. 그러면서 차오르는 생존에 대한 자신감. 정말로 저 상공을 나는 새를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돌보지 않지만 자유롭고 담대하게 살듯이 우리는 그런 존재라는 의식이 마음을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쓸데 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다시 챙겨들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면 즐거운 삶이 기다린다는 사실도 챙겨들었다.

자신만의 것, 삶의 의미 주제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부정성. 치우고 치워도 쉴새 없이 쌓이는 눈처럼 남아 있다. 그렇다면 환하게 빛나는 햇살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이 해야 함을 알았다. 나를 햇살 앞에 자주 놓는다. 밝음에 드러나는 부정성을 훌훌 털어낸다.

직관이란 분석,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등등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제대로의 삶을 살려면 자연스레 직관이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 글을 쓰더래도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손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손이 저절로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는 것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산촌, 인간이 아닌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을 보고 느끼면서 생명체들이 긴밀한 공동체를 이루고 조화를 중시하며 살아왔음이 느껴진다. 수많은 생명체의 자아가 공동체 전체의 의식에 흡수돼 하나로 되어 있다. 보는 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호소하고, 생각과 시각을 다른 세계로 이끈다.

사람은 때때로 크게 변하기도 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대담하게 깨뜨린다.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힘차게 날아 오르기도 한다. 뜻하지 않았지만 만나진 불가사의한 흐름에 순응하며 대담한 전환을 이룬 나의 삶, 내 나이 70이 경이로울 뿐이다.

"마음 닦으며 무수겁(無數劫)을 지내고 이제 와서 삼계(三界)에 독존(獨尊)이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이었을까, 내가 느낀 감각으로, 언젠가 어디에선가 본 글이다. 정말 무수겁을 살아온 느낌으로 이제 나도 독존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나의 산촌, 자연이 주는 기쁨, 편안함과 고요함으로 자연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학습을 잘 할 수 있는 상태로의 변화가 이루어진 듯 하다. 내 나이 70이 기쁘다.


2021.01.04. 아침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