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을 버는 일에서 물러나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놀고 먹으며 지낸다, 은퇴자란 얘기다. 사회 활동에서도 손을 떼고 은거하여 한가히 삶을 즐기고 있다. 은퇴의 전형적인 삶, 완벽한 은퇴라 여겨진다. 그런 나의 은거지는 산촌이다. 산이 첩첩이 둘러싼 아늑한 산골 마을, 하지만 높은 산이 나를 누르는 느낌은 없다. 산들이 포근하게 나를 감싸는 듯 하다. 그리 넓지 않은 산촌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어 한가로움이 물씬 풍기는 곳에 나는 홀로 있다.

홀로 있어 삶의 방식을 내가 독자적으로 선택하고 즐긴다. 삶이라는 것에 쫓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내게 베풀어진 것을 누리고 산다. 전에 살아왔던 도시라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산다는 것, 은퇴한 삶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듯 하다. ‘다름’을 알아가며 ‘다름’에 적응하며 자신의 적응능력을 보면서 나 자신이 대단해 보이고 색 다르게 느껴진다.

‘다름’은 새로운 것들을 익혀야 함을 뜻한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함도. 또한 ‘다름’은 새롭게 많은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다름’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찰을 하게 하고 학습의 기쁨을 부른다.

내가 선택한 다른 삶의 공간인 산촌은 자연이 주도하는 환경이다. 자연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그들의 생명력이 경외심을 부른다. 그러니 겸허한 자세가 저절로 갖추어 진다. 부족한 존재, 공부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운다.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학습을 하라고 요구하면서 많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산촌. 먹고 사는 방법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며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관찰과 삶의 태도를 되돌아 보게 한다.

즐비하게 늘어선 ‘모름’이 학습을 요구하며 ‘앎’의 길로 안내한다. 그 길에는 많은 생명체들과 자연이 스승으로 나서서 가름침을 베풀어, 은퇴한 자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관찰과 생각을 통해 삶의 왜곡되었던 부분들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바로 잡게 한다. 그런 내게 자연은 고요함도 알려주고, 예쁨의 진수도 알려준다. 화려함과 소박함도, 생생함과 익어감도, 한적함과 자유로움도 알려준다. 철 따라 제공되는 먹거리는 베풀어짐에 대한 고마움을 부른다.

존재감, 산속에 숨은 듯 핀 야생화의 아름다움, 화려하게 자신을 돋보이는 자세로 피어난 꽃들이 알려준다. 존재의 대단함을 느끼며 나는 자연에 점점 다가간다. 그러면서 차오르는 생존에 대한 자신감을 느낀다. 정말로 저 상공을 나는 새들,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돌보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롭고 담대하게 살듯이 우리도 그런 존재라는 의식이 마음을 채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감, 쓸데 없는 에너지의 낭비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다시 챙겨든다.

사랑스러운 산촌을 걷고, 바라보고, 그 공간을 즐기는 각종 새들을 바라보며, 은퇴자로서의 기쁨을 누린다. 정말 고마운 삶이다. 그래서 은퇴란 축복임을 알린다. 또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면 즐거운 삶이 기다린다는 사실도 알린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