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종도 씨사이드파크 산책을 저녁 무렵 했다. 바닷물이 밀려오고,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고, 잠자리들이 공원을 날았다. 커다란 울림통을 가진 듯한 뱃고동이 깊은 아름다움을 알리는 세상이 나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잠자리 한 마리가 기분 좋게 날아오다 내 눈앞에서 그만 거미줄에 걸렸다. 갑자기 아름다움이 물러나고, 밀려오는 바닷물 소리는 아픔의 소리로 들렸다.

잠자리는 맹렬히 거미줄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꼬리를 이리저리 꼬며 맹렬한 속도로 다시 날고자 했다. 그러나 거미줄은 엄청난 힘으로 그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미가 커다란 먹이가 잡혔다고 신나게 달려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그를 구하러 달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잠자리의 맹렬함은 공허한 열심으로 보였다.

우리네는 살다보면 잠자리처럼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함정에 빠져 포획된 듯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대부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친다. 머리를 맹렬히 돌리며 나름의 수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시도한다. 그것도 열심히 분주하게.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그런 행위는 더욱 맹렬해진다. 잠자리처럼 말이다. 잠자리는 옆의 나무 꼭대기 가지에 가만히 앉아있는 다른 잠자리를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네는 보통 구해주지 않는다 원망하고 부러워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산책의 반환점까지 갔다가 되돌아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데 약 30분이 걸렸다. 그 시간까지 잠자리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에 찾아보니 그 잠자리는 그 자리에서 비쩍 말라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거미는 곤충의 체액을 빨아먹는다 하니 말라버린 잠자리는 거미에게는 자신의 집을 노출시키는 방해꾼에 불과할 것이다.

여름철 산을 걷다보면 간혹 거미줄에 내가 걸리기도 한다. 내가 끊어버린 거미줄, 보이지는 않았어도 줄의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줄의 강도가 강한 것이다. 거미가 줄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물질은 생체계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 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은 늘 겸허를 불러온다.

그렇게 강한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 삶에서 만나진 절체절명의 상황, 다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치게 한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이 우리를 살려주지는 않는다. 잠자리의 몸부림은 아마 그의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거미줄에서 계속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몸부림을 쳐도, 아니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어도 위기의식은 사람을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가끔 TV에서 보게되는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들. 그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면서 쓰레기를 집에 모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잠자리까지, 화장실까지 자신의 생활공간을 쓰레기에게 넘겨주었다.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주어먹으며 불철주야 쓰레기 수집에 열심인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그래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일수록 열심히 움직이는 것을 놓아야 한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것도 놓아야 한다. 위기의식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과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니 위기에 놓였을수록 일단 가만히 있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맑게 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잠자리도 거미줄에 걸린 후에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거미줄에서 그를 구해줄 수도 있었다. 그의 맹렬한 움직임이 애처로움을 불러일으켰으나 그를 구하는 행동을 못하게 저지했다. 그가 가만히 있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살폈다면 거미보다 큰 몸체인 그가 살아날 방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챙겨든다. 우리는 잠자리가 아니라 지구 최고의 지성을 갖춘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고요함을 지키고, 머리를 맑게 지켜야 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