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29일 목요일 맑음
지금은 오전 10시40분 햇살이 방 뒤 창문을 찾아왔다. 햇살, 특히 겨울의 햇살은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세상을 환하게 드러내는 햇살, 여전히 눈이 하얗게 보이는 산골, 반짝이는 자연의 보석들. 빛나는 보석들을 만나 황홀해지는 것은 햇살이 하는 역할이다. 고마운 세상이다. 소유하지 않고 찬란한 보석들을 즐길 수 있어서.
어제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니 밤새 살짝 눈이 뿌려져 기존의 마당을 살짝 덮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내게는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집을 나서서 쳐다본 하늘이 신비로운 색으로 보였다. 사진에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걷다보니 만난 개울의 억새와 눈.
개울이 거의 살짝 얼었다. 얼음은 눈을 받아들고 있었고, 한 곳의 얼음은 구멍이 났다.
그렇게 오전 걷기를 하고 마을회관에 갔다. 어제는 11시부터 노인회 총회를 하는 날이었다. 사람이 얼마되지 않아도 부녀회장도 있고, 마을 총무도 있고, 노인회 총무도 있고, 60대인 그들이 음식을 장만했다.
회의라고 모이면 먹고 마신다. 쌀도 남아 떡을 3 가지나 했단다. 돼지불고기, 오징어와 무로 끓인 국, 잡채, 전, 시금치나물, 김으로 식사를 하고 석화를 쪄서 디저트처럼 또 술안주로 먹었다. 술을 따라주니 주는대로 나는 마셨다.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지만 굴전과 석화를 안주로 해서 나는 많이 마셨다. 굴전과 석화는 오랫만에 먹는거라.
기본 준비는 끝내고 방에서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회의는 주로 남자들이 모여서 한다. 결산보고를 하고 이번엔 노인회 총무를 새로 뽑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끝내고 대체로 노인분들하고 점잖은 사람들은 갔다. 술을 마시다 흥이 맘껏 돋구어진 몇몇이 노래방 기계를 틀고 노래를 하고 몸을 흔든다. 노래방 기계는 오래 돼 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노래 하고 춤추고, 어제는 몇이 흥이 제대로 났다.나는 끝까지 남아 계속 먹고 마시고 노래도 몇 곡 뽑았다. 삐걱대는 몸도 흔들었다. 그리고 남은 음식들을 싸왔다.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 다 처리가 되었는지 걱정이다.
나는 지금 이래저래 먹을게 엄청 늘어섰다. 소분해서 냉동 냉장에 저장을 했다. 밥까지 조금 싸와서 지금 누룽지를 만드는 중이다. 소화가 잘 안될 때 끓여먹을 누룽지를.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는 게 재미있다. 일요일에 장을 본 것도 있고, 어제 먹거리 선물이 택배로 와서 음식 스케쥴을 잘 잡아야 즐겁게 먹을 수 있고, 음식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먹거리가 넘치는 상황이 부유한 거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내게는 즐거운 인생이다. 안해본 노래도 산골에 와서 해보고 , 생활방식도 다르게 살아보고, 재미있는 인생이다. 지금 만드는 누룽지가 내는 고소한 냄새처럼 고소한 삶이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또 고소한 맛을 느끼면서 즐겼다. 세상에 새로운 생활방식을 던져준 드라마. 이 드라마에 혹평을 하는 사람들은 스토리에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제 전개된 세상의 삶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안타깝다. 세상의 변화를 알아야 삶은 즐거운 것이다. 돈으로 만들어진 누룽지를 사면 고소한 맛으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나처럼 남는 찬밥 등으로 누룽지를 집에서 만들면 집이라는 공간이 고소함으로 가득 찬다. 즐김의 폭이 달라지는 것으로 삶은 이런 것이다.
오늘의 밝은 햇살, 밝은 세상에서 나는 감사함으로 산골에서 걸으며 기도하고 수행한다. 그렇게 늙어간다.
visionary 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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