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3월 8일) 나는 올해의 첫 농사일을 했다. 품삯을 받고 103세 할머니네 집의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를 심는 일이었다. 아침 7시에 '앉을게'와 호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아무도 와 있지 않았다.

나는 이 마을에서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대충 미소로 때운다. 말을 또 잘못 들은 것이리라 생각하며, 추워서 가까이 있는 집에 들어갔다. 집주인 은 추워서 일찍 시작 안 할 것이라며, 들어오라더니 뜨거운 차를 대접해 준다.

30분쯤 지나서 비닐 하우스로 가니, 다들 모여 있다. 호미를 들고 온 나를 보고는 모두 웃는다. 나는 고추 모종을 사다가, 비닐 하우스라 빨리 심는줄 알았다. 나의 무지함이 산골 마을의 여러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비닐 하우스에서 어린 새싹의 고추모를 밭에 심을 때까지 키우는 것임을 설명 듣고야 알았다. 그 집은 고추모 농사를 짓는 것이다. 떡잎에다 한 두어 개의 잎이 난 어린 새싹을 심는일. 5월이면 각 농가에 팔려나가 노지의 밭에서 더욱 자라고, 꽃을 피우고 고추를 맺을 것이다.

싹을 심을 기준 자와 작고 뾰죽한 막대가 있었다. 나무 막대에 심을 위치를 나타내는 선이 그어져 있다. 그 나무막대 위에는 손잡이가 될 좁은 막대가 붙어 있었다. 그 막대를 놓고 2인1조로 양쪽에서 싹을 심었다. 뾰족한 막대로 구멍을 내고 거기에 어린 고추 새싹을 넣고 흙을 덮어주었다.



오전 10시 새참으로 컵라면 하나와 시루떡이 나왔다. 그리고 오후 1시 점심이 나왔다. 모처럼 나는 봄느낌이 나는 반찬과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의 돼지고기를 즐겼다. 미역과 달래를 같이 새콤하게 무쳤다. 또한 도라지를 초고추장에 무친 것, 콩나물, 김,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 등. 혼자 해 먹지 않는 도라지나물과 달래무침을 먹으며 나는 봄을 느꼈고, 영양식을 먹는 기분에 잠겼다.

이렇게 간단한 나의 식사에 일반적인 반찬을 먹어볼 기회가 어제 주어진 것이다. 거기에 일당으로 5만 원을 받았다. 일은 4시 경에 끝이 났고, 오는 화요일에 남은 비닐하우스에서 또 고추모를 심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오전에는 내가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려 미안함이 많았으나, 오후에는 조금 요령이 생겼다. 미안해 하는 나에게 일 시키는 아주머니나 아저씨, 그리고 나의 파트너가 처음 하는 일인데 야무지게 잘 한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손에 익으면 앞으로 잘 할 것이라고 격려까지 한다.

내가 살게 된 이 마을, 나를 품어주고 환영해 주었다. 그래서 고향에 온듯 편안함을 얻었다. 이 마을에 지금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모처럼 온다. 아침에 일어나니 녹으면서 내려도 사방이 흰 세상이다. 눈에 습기가 많으니 나무들은 눈꽃을 잔득 피워내 환상을 자아낸다.

나 자신도 상상을 못했던 일, 내가 산골에서 일당을 받으면서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려 산다는 사실. 땅바닥에 앉아 밥을 먹으며, 세상을 전과는 다른시각으로 보게 된 사실. 자유를 즐기고 자연을 사랑하게 된 사실.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는 사실. 넉넉한 부자의식으로 비롯된 여유로움. 정말로 신기하기 짝이 없다.

경이로운 나의 삶이 느껴지니, '빅뱅'이란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나의 모든 것이 없어지면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었기에.

일이 다 끝나니 두겹의 비닐 하우스 안에 아래 그림과 같은 기다란 묘판이 3 줄로 완성되었다.

고추모가 심어진 묘판에 물을 주고, 둥글게 휘어진 나무를 꽂아 지붕을 만들고 비닐을 씌운다. 그리고 그 위에 또 검은 차광막을 덮은 것이다.

2014.3.9. 아침에


앉을게--> 앉아서 일할 때 엉덩이를 받쳐주는 것이다. 넓은 고무줄이 있어 양쪽 다리를 넣고 입듯이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