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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12일 일요일 비
드디어 지금 산촌에 바가 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오며 많은 생명들에게 기쁨을 준다. 며칠 마당을 정리하면서 보니 가뭄의 정도가 생각 밖으로 심했다. 오지 않는 비를 원망 말고 물이라도 줄까 했으나 생각에 그쳤다. 나는 이기주의자이다. 내가 움직이기 싫으면 단순한 일도 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 내가 존경하던 Y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30년이란 긴 시간 그를 지켜봤다. 내가 그와 같은 장애가 이다면 나는 살 수가 없다고 여겨지는 심각한 몸의 상태.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는 성실하게 꾸준히 자신을 성장시켜 나의 존경심을 높혔다. 그런 그가 그를 지극히 제한했던 몸을 벗어나 자유로이 훨훨 저세상으로 갔다. 나는 축하할 일이라 여긴다. 존재는 계속된다고 여기는 나는 이세상에서 그가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세상에서는 더욱 발전한 존재로 살 것임을 믿는다.
나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산골에 국한시키고 살고 있기에. 또한 그를 나홀로 조용히 축하하며 보내는 작업을 해야 했기에. 나는 산촌을 걸으면서 또 정원의 풀을 뽑고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치우면서 아직도 남아있던 관계의 흔적을 지웠다.
걷다가 붉은 색의 개구리를 난생 처음 봤다. 개구리가 아닌 지도 모른다. 지난 주에 처음 나타나 요즈음 여기저기에서 활발하게 날기 시작한 나비의 사진. 개구리가 나타난 공간에 그들이 날고 있다. 산촌에 제일 흔한 나비로 제일 일찍 나타나고 제일 늦게까지 그들은 있다.
요즈음 마늘 밭에서는 마늘싹이 예쁘게 자라고 있다.
비닐에 뚫린 구멍으로 세상을 만난 그들이다. 그런데 누구나 그 구멍을 무사히 통과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일일이 보면서 마늘에게 구멍을 통해 나오게 하는 손길이 필요하기도 하다.
마당의 낙엽을 치우니 낙엽이불 밑에서 이미 새싹이 크게 자랐다.
싹이 포개져서 장미 모양을 이룬 새싹. 그들은 자라 여름에 붉은 색 꽃을 피운다.
벌도 다 사라진 초겨울에 강한 향을 내면서 꽃을 피운 나무가 있었다. 그러다 추위에 꽃들은 얼어 죽았다. 겨울에 전 나무에 꽃이 피었기에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그들은 또 피어났다. 강한 향기에 땅벌들이 모여들어 윙윙 소리가 자못 크다.
계절을 잘못 인지했어도 다시 제철이 돌아오면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나무. 생명이란 이런 것이다.
마당의 낙엽들을 치우니 여기저기 나의 먹거리들도 보인다. 노랑꽃풀의 새싹은 내게 샐러드 재료가 될 것이다. 부추와 달래들도 태어나 자라고 있다.
나는 이슬을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야채를 먹어도 육류를 먹어도 살아있는 생명을 앗아 내가 먹는 것이니 말이다. 점점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이슬만 먹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러다 저세상으로 슬쩍 넘어가고 싶다. 이제 생선을 만지는 것도 싫어 생선요리를 해먹지 않는다. 고기도 손에 대는 것이 점점 힘이 든다. 이슬만 먹고 살고프다.
개울에 홀로 서있는 나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리라. 그는 주변의 벼도 풀도 작은 나무들도 이상하게 여기며 살지 않을까. 그런 그가 나는 멋스럽게 보인다. 개울 옆에 있어서 생명유지의 기본을 갖추고 사는 그다. 나도 그러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달라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을 넘어 '또라이'라 여길 것 같다. '또라이'로서 나홀로 삶을 조용히 산촌에서 자연과 함께 나는 산다 오늘도. 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visionary 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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