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둑에는 꽃다지가 꽃을 피우려고 한다. 하지만 한쪽에는 억새가 빛바랜 누런 색으로 여전히 겨울임을 말한다.

이번 겨울, 산촌을 걸으면서 억새가 눈에 계속 밟혔다. 빛바란 색으로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고, 뒤엉켜 몰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친구들도 있다. 그 모습들이 늙음이라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아 내 눈을 잡아 끄는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그 모습을 꺽지 않고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자세에서 나를 본다. 타인의 눈에는 낡고 추레한 모습일 수 있지만 그래도 당당한 자세로 담대히 늙어있는 모습으로 나의 모델이 되어 산촌을 지키는 것 같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책임지고,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독립적인 존재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내려는 나를 응원하는 산촌에 고맙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