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가을의 맛이 잔뜩 나는 산촌의 길을 걷는다. 길은 나에게 색다르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늘 선물로 준다. 그러한 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자연스레 나의 눈을 끌어 당겨 맛을 보게하고 즐거움이란 강물에 나를 푹 담군다. 또한 내게 가르침도 베푼다. 삶에 대한 가르침을.

걷다가 무심코 돌린 눈에 들어온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다. 처음에는 벌레인줄 알았으나 주저앉아서 보니 그는 참나무 구멍으로 솟아난 어린 싹이다. 그곳은 버섯농장 근방이라 버섯을 길렀던 참나무 껍질 조각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 잔해, 잘못 싹이 솟았으면 두꺼운 참나무 껍질로 빛을 보기 힘들텐데 용케도 뚫린 구멍으로 싹이 나왔다. 내게는 참으로 색다른 맛을 주었다.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그가 준 색다른 맛이 내게는 강렬했다. 어린 새 생명이 주는 강렬한 영향력. 이렇게 작고 위대한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생명도 그 영향력이 크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 인간들은 다 저마다 이 세상에 영향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챙겨든다. 그러나 인간은 '잘난 척'들은 되게 많이 하면서 사실 잘난 존재라는 의식은 갖고 있지를 못하다. 그러니 그저 '잘난 척'에 급급해 분수에 맞지 않는 화려한 외제 자동차라는 갑옷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있는 우리 산촌의 개울을 소중히 다루었으면 한다. 나날이 산촌의 개울에 녹조현상이 심해지니 걱정이 된다.

날이 쌀쌀해지면서 메뚜기류들은 기운을 잃어가고, 길에는 그들의 사체가 많다. 몸의 색깔이 초록색인 아이들은 날이 선선해지면서 몸의 색을 바꾼다. 어떤 친구는 적갈색을 띠기도 하고 어떤 것은 누런 색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초록에서 색이 일시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일단 다리를 비롯해서 몸의 선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내게는 신기한 맛을 준다.

길을 걷다 어느날 갑자기 오른쪽 나무에서 나의 눈을 부른다. 고개를 돌리니 나뭇잎에 붉은 치마를 입은 사마귀가 있다. 사진을 찍어도 그는 도망가지를 않아 내게 고마움과 함께 신선한 맛을 또한 느끼게 했다.



근처의 길섶에 새롭게 생긴 세삼이 꽃을 피우고 있다. 여름에 떨어진 씨로 그들은 태어난 듯하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어떻게 완전 기생식물이 되었을까. 그들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양분을 기생하고 있는 식물에게서 흡수하는 노력을 하니 말이다. 다른 생명에게서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탄소동화작용도 하고 뿌리에서 빨아들이고 하는 식물들이 더욱 자긍심을 가질 것 같다.



최근에 밝혀진 이영학(일명 어금니 아빠)라는 사람의 생존 방식이 세삼처럼 완전한 기생을 도모한 것이리라. 그래도 그도 나름 노력을 했다. 불쌍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노력 말이다. 기생식물인 세삼을 보며 홀로 오똑하게 서서 성장하고 있는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산촌의 가을 맛이 낙엽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길에서 제공하는 기쁨을 누린다. 늘 기쁨을 누릴 존재라 스스로 규정하였기에 기쁨이 찾아오고, 다양한 행복의 맛도 나를 찾는다. 그러면서 공부도 한다. 참으로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