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목적지로 인도하는 길인지 모를 때 발걸음은 느려진다.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불안한 걸음걸이. 그러다 막다른 곳에 이르면 당황스럽고, 두렵고, 되돌아 길을 찾으며 공포를 느낀다.

길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갈림길, 어느 길이 가야할 길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불안하다. 갈림길의 안내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에 도전한다. 그렇게 만나진 환경, 제대로 선택한 듯한 환경에 기쁨으로 성큼성큼 발을 옮긴다. 제대로 길을 가는 것으로 알았지만 갑자기 펼쳐지는 가시덤불길, 잠시의 어려움이라 여기고, 덤불을 헤치며 길을 걷는다. 몸의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들을 가진 상태에서 사방에 푸른 초원과 꽃이 펼쳐진 듯한 길을 만나 기쁨으로 걷는다.

그러다 갑작스레 맞닥친 낭떠러지, 그제야 알아차린다. 불행은 행복이란 옷을 입고 찾아오고, 행복은 불행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는 사실을. 낭떠러지에서 뒷걸음을 쳐본다. 하지만 거센 바람이 앞으로 몰아쳐 뒷걸음을 방해한다. 바위를 꼭 끌어안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낭떠러지로 내모는 바람에 저항을 한다. 기운이 떨어져 바위를 안은 팔이 스르르 풀어지고 낭떠러지로 내몰려 아래로 떨어진다.

공포로 잊은 자신과 세상,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시간은 흐른다. 길이 아닌 곳도 자신을 위한 길이었음을 비로서 알아차린다. 떨어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떨구게 했다. 다 찢기어진 옷을 입은 상처투성이의 아픈 몸만이 남은 상태에서 알 수 없는 곳에 누어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진 가벼움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분좋은 느낌을 준다. 버리고 싶은 모든 것,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버려야할 것들을 일시에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이런 길이 아니고 어떤 것이 있겠는가. 그런 자각이 기쁨을 준다. 그래 불행의 옷을 입고 나를 제대로 안내하는 길을 만났구나.

이제 길이 확실한 모습으로 보인다. 전에는 어떤 길을 가야할 지 몰랐음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어디로 가야야는지 목적지가 확실해졌다. 길을 가야 하는 삶의 목적과 삶의 의미가 확실해진 것이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넘어선 존재로 우뚝 선다.

그래, 이제 확실한 길을 간다. 당당하게 담대함으로 걷는다.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세밀히 보며 즐긴다. 세상이 베푼 모든 것을 누리며 행복한 존재임을 느낀다. 어떤 것도 행복한 존재라는 존재감과 당당함을 이제 가져갈 수는 없다. 행복함과 당당함, 여유로움과 풍부함이 자신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것은 이제 발 디딜 곳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길을 가며 길에서 만나진 모든 것들에서 가르침을 받는다. 학습된 정도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니 늘 학습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배우고 또 배우고, 익히고 또 익히며 걷는 길. 기쁨의 길이다. 햇살이 가득한 길이다. 

싸늘한 겨울에 개울물이 얼어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러다 녹아서 다시 흐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극히 일부가 기화되어 허공에 올라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걸으며 액화(液化)와 기화(氣化)를 보면서 배운다. 삶도 그러한 것이라고. 액화 보다도 기화에는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길을 걸으며 학습을 하며 그러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충분한 상태에 이르면 물이 기화되어 형체가 사라지듯이 그렇게 형체만 사라지는 그런 존재가 되리라.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