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걷는다.
바람이 살랑살랑 길을 걷는다.
바람이 살금살금 길을 걷는다.
바람과 함께 걷는다.
하늘은 높고 푸른 선선한 가을이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 길을 걷는다.
폴짝이는 메뚜기와 길을 걷는다.
소근거리는 풀벌레 소리와 길을 걷는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과 길을 걷는다.
우뚝 선 몸매를 자랑하는 숲의 나무들과 길을 걷는다.

재잘 재잘재잘 참새떼,
홀로 노는 왜가리,
날쌘돌이 다람쥐,
펄쩍 펄쩍 뛰며 도망가는 고라니,
푸드득거리며 도망가는 산비둘기,
모여서 멋진 꼬리를 자랑하며 날아가는 산까치,
고개를 외로 꼬고는 햇살을 즐기는 사마귀,
산촌의 길에서 함께 노는 온갖 생명체들.
  
햇살이 따사로움으로 길을 비춘다.
햇살이 황금빛으로 익은 벼를 비춘다.
살짝살짝 변해가는 나뭇잎을 비춘다.
길에서 노는 온갖 생명체들을 따사롭게 하는 햇살.
햇살 은근히 하는 사랑의 애무.

따스한 햇살과 함께 솔솔 부는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햇살로 밝게 빛나는 길에 있는 압사한 뱀이 주는 아픔도,
짓밟힌 매뚜기들의 처참함이 찌르는 아픔,
TV화면을 통해 본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대재앙,
생명체의 무기력함이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길을 걷는다.
사랑도 아픔도 고통도 희열도 느끼며 걷는다.
높은 하늘이 경외를 알린다.
맑은 하늘이 지금의 맑음을 즐기란다.
두둥실 흰구름이 '지금'은 또 '지금'을 낳는 것임을 알린다.
늘 '지금'에 사는 우리임을 알린다.
그래 지금을 즐긴다.
햇살의 애무에 몸을 맡기고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2018년 10월4일인 오늘도 나는 걷는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