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나는 늘 걷는다. 날씨가 어떠해도 걸으면서 다양한 나무를 본다. 저마다 다른 매력을 풍기는 나무들. 그 중에서 어른 냄새를 무척이나 풍기는 나무가 있다. 그는 내가 근처를 지날 때면 자기를 보라고 내 시선을 잡아끈다. 마을에 300 년 넘게 살아온 커다란 둥구나무도 있으나 개울 옆에 있는 이 나무는 그 정도로 오래 살지는 않았가. 하지만 굴곡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하며 항상 나의 시선을 잡는다. 가지가 쭉쭉 뻗지 못하고 유난히 굴곡이 심하다. 오랜 풍상을 이겨내며 자신의 생명에 책임을 지고 성장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아마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운가 보다.

그 나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사고를 갖춘 듯하다.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환경을 수용하고 묵묵히 성장한 생명인 듯하다. 기우뚱하게 자라서 자칫 균형을 잃을 것 같지만 묘하게 나름의 균형을 갖추고 그는 마을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 확신에 책임을 지면서 세월을 버틴 흔적을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른이된 나무로 느껴진다. 아마 그의 내면에는 오랜 세월의 깊은 지혜가 쌓여있을 것이다. 주변의 많은 생명들과 함께하며 갖춘 지식으로 삶에 대한 깊은 내공(內功)을 쌓았을 듯 싶다.

그는 삶의 무게를 이겨낸 존재로서 개울의 흐름을 바라본다. 날씨가 어떠해도 그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봄을 맞는다. 그를 바라보며 나도 봄을 맞고 어른이 되어간다.  


2019년 4월11일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