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COVID-19 와 긴 장마, 거기에 연속해서 침공해 온 태풍. 전방위적인 재난을 만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방향을 알아가는 듯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다.

내가 사는 산촌의 개울, 물이 지금 맑음 그 자체다. 폭우로 대청소가 되었기에 그렇다. 맑은 물의 막힘 없는 흐름을 보면서 내 삶의 어떤 과정이 떠오른다. 나의 쓰레기가 가득 찼던 삶, 이고 졌던 짐으로 압사할 것 같았던 내 삶의 고통이 잠시 떠오른다. 나로서는 어찌 해결할 수도 숨도 쉬기 어려웠던 상황이 지금은 싸악 해결 되어 해맑은 개울이 되었기에.

개울을 가득 채웠던 억새도 거의 사라졌다. 과거 호우로 물에 잠겨도 물 속에서 격류의 흐름을 따라 몸을 다 눕히고도 굳센 뿌리로 자신을 지켜낸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폭우의 강도, 물 흐름의 세기가 엄청났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개울에 던져진 쓰레기들도 다 사라졌다. 대청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한없이 맑고 맑은 물의 흐름이다.

폭우와 태풍이 한 것처럼 내 가정의 붕괴와 사업에서의 파산은 내게서 모든 것을 없앴다. 텅 비어 가벼운 내가 되었다. 내가 이고 졌던 짐도 다 사라졌다. 그러니 홀가분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소유해야 할 기본적인 재화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도 남지 않았다. 비로서 자유로움과 맑음으로 가득찬 나란 존재가 밝은 세상에 드러났다. 비로서 주변이 제대로 보였다. 내가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개울의 물결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던 삶에서, 비로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존재로 전환된 나. 바닥의 모든 것이 샅샅이 보이는 맑은 개울물 처럼 맑아진 눈으로 길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울과 거기에 머무는 모든 생명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얻게된 맑음, 나도 고통의 순간들을 넘어 자유로움과 맑음을 얻은 것이다.


맑디 맑은 개울물이 노래를 부르며 자유롭게 산촌을 흐른다. 맑디 맑고 가볍고 자유로운 나도 물 따라 산촌의 길을 걷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렇게 내가 갈 길을 찾았고 지금 나는 그 길을 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고마움으로. 갈 길로 인도한 선각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방법을 알려준 선각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행복한 존재로.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