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난(危難)은 재난 중에서도 몹시 위험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 위난을 인류는 지금 만나고 있다. COVID-19로 긴장이 고조된 세상의 곳곳에서 폭력사태도 발생해 인류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세계가 하나로 자원이 이리가고 저리가면서 이루어지던 산업에 물류대난이 일어나고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인 문제도 재난을 넘어 위난이 되고 있다.
한 애벌레가 내게 위기에 대해 생각을 던져준 적이 있다. 몇 년전 나물을 뜯으러 집 옆의 산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들어가니 더욱 청량한 바람이 불고, 청아하게 예쁜 새들의 우는 소리도 있었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도 있었다. 산의 여기저기를 취나물을 탐색하며 돌아다니던 중 한 나무 밑을 고개를 숙이고 지났다. 거침없는 내 행보에 마른 가지도 떨어지고, 거미줄도 끊어져 나갔다. 아마 나의 행보는 거미에게도 큰 재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목 뒤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 손을 대니 뭉클한 감촉이다. 순간 기겁을 한 나는 그것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그것은 제법 큰 그 무엇인가의 애벌레였다.
나무 밑에서 얼마든지 애벌레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예상을 못했던 순간이었기에, 그것도 보이지 않는 목의 뒷부분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행동이 과격했기에, 그순간 바닥에 내던져진 애벌레에게 '어머, 미안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애벌레가 만난 이런 상황을 위난이라고 할 것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일어났고, 애벌레는 어떤 자발적 행위로도 이런 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도 예측 못한 한순간의 위기의식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는 절대적인 안전지대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미국의 9.11사태나 동일본대지진 등의 참사는 우리 인류에게 충격적인 위난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COVID-19 사태도 인류에게 공포스러운 위난이기 때문이다. 예상지 못한 위기, 아이들이 학교에도 제대로 갈 수 없는 사태, 우리는 지금 모든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 사태인 위난을 만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없을 때 일단 가만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애벌레가 내 뒷목에 떨어지고 내가 잡아서 던질 때까지 그는 놀란 맘이었더라도 '큰 일이 났다'거나 '나 죽느다'라고 비명을 질러대기 보다는 그저 죽은듯이 있으면서 자신의 맘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던져진 바닥에서 자신을 진정시키고 나아가 자신이 있었던 나뭇잎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포에 떠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살아나는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평상시에 자신의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만약의 사태를 염려하고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담대하게 만드는 일에 애를 써야한다고 확신한다. 지금 위난의 시대에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잠시라도 고요에 머물며, 자신을 편안한 상태에 머물게 해야 한다. 그 편안함이 면역력도 향상시킬 것이다.
내가 애벌레를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 것은 공포감 때문이었다. 산촌 생활을 시작한 초기에 모름으로 만난 애벌레를 순간 무엇인가의 괴기스러운 공격으로 받아들인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내가 위기를 만났다는 의식이 없었다면 애벌레를 잡아서 그냥 바닥에 놓았을 것이다. 나의 위기의식이 애벌레에게 위난을 만나게 했다. 그러니 항상 담대함으로 내가 있어야 함을 그 사건이 내게 알려주었었다.
visionary 이화순 lhs@vision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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